[마약 이야기] #1 태초에 마약이 있었다.

 

알파고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후, 모든 사람이 AI의 전문가가 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올 것인가? 그렇게 되면 인류는 끝장인가?" 같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전화번호도 하나 못 외우는 사람들의 고민이라고 하기에는 기계들에게 다소 미안한 수준이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뜬금 없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언제부터 특이점을 넘어서 동물이 아닌 '인간'이 됐을까?

물론 인간은 동물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호모사피엔스나 다른 동물이나 다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확실히 다르다.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다른 동물들과 달라진 그 순간을 특이점이라고 해보자. 인간은 어떻게 그 특이점을 넘을 수 있었을까? 

미국의 학자 테렌스 맥케나는 자신의 저서 <신들의 음식>에서 '마약 원숭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인류의 진화과정

 

아프리카에 살던 고대 인류는 우연히 환각물질인 실로시빈이 포함된 버섯을 섭취하게 된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러니 그 버섯을 찾아 계속 섭취한다. 그런데 이 버섯이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뇌를 자극하고, 더 좋은 시력을 얻게 해준다. 그 덕분에 이들은 경쟁자보다 뛰어난 사냥꾼이 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식에도 유리했을 것이다. 또 환각을 보게 되면서 도구 제작, 언어, 자기 성찰, 종교와 관련된 상상력도 발휘 한다.

 

 

 

우리도 평소에 조금 부족하거나 소심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과감한 결정을 하면, '오~ 재 약빤거 아냐?'같은 말을 한다. 테렌스 맥케나는 진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조상이 약을 빨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특이점을 넘어 설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에서 마약의 흔적이 발견된 경우가 있지만, 그 때문에 인류가 진화하게 되었는지를 판단하려면 살아 있는 원시인을 데려다 뇌파 검사라도 해봐야 한다. 셰프가 숨겨놓은 MSG마냥,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대마초(마리화나)

 

마약 물질이 뇌를 자극하고 수행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맥케나 이후 수많은 이들의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마약이 뇌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것과, 그로 인해 진화를 했다는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당연히 마약 원숭이 가설은 정설이 아니다. 야생의 동물들도 환각 식물을 즐기 경우가 있으니 인류의 조상도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문에 인류가 진화했다고 주장하려면 훨씬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많은 학잣는 맥케나의 주장을 약빨고한 헛소리정도로 치부한다. 이게 단순히 악의적 비난은 아닌 것이, 맥케나는 실제로 마약을 흡입했다. 물론 그가 마약을 했다고 그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순없다. 다만, 진화의 신체적 변화를 고려해 봤을때, 마약가설보다는 화식가설이나 육식가설이 더 그럴듯할 뿐이다. 하지만 진화는 복잡한 과정이고, 중간에 어떤 원인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을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샤머니즘

 

그럼 일단 진화는 했다고 치고, 그 이후 이야기를 해보자. 

기원전 1만 2000년쯤부터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같은 기초적 형태의 종교들이 생겨난다. 학자들은 이때부터는 인류가 확실이 마약을 인식했다고 본다. 종교지도자인 샤먼이 주로 마약을 사용했는데, 이들은 의사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에 주변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주로 마약류 버섯이나 풀을 이용 했다.

 

 

 

우리 생각에는 샤먼들이 미친 척하면서 헛소리로 사람들은 현혹해 놀고 먹은 것 같지만, 신들린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마약식물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어려워 졌을 것이다. 인도 수행자들을 보면 오랜시간 명상을 통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이들도 있지만, 약물의 도움을 받아 빠른 시간안에 경지에 이르는 걸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신의 MSG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마약식물들을 통한 망아 상태와 황홀경이 샤머니즘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샤먼에게 마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동굴 벽화에도 샤먼이 이상한 버섯을 주워먹는 장면이 남아있다. 신석기 기대가 되고 능력이 시작되면서, 마약은 단순히 주워먹는 수준을 넘어 재배되기 시작 한다. 기원전 5000년 쯤 되면 천연 마약 중에 성능이 꽤 좋은, 대마초, 양귀비, 코카가 등장한다.

신기하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살기도 빠듯했을텐데 마약이라니,,, 우리는 ' 인류가 농경을 시작했다'라고 하면, 당연히 식량 생산을 위해 농경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하지만 <코스모스> 로 유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은 자신의 책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친구가 연구를 위해 원시상태의 삶을 유지하는 피그미족과 한동안생활 했는데, 수렵,채집으로 삶을 영위하는 피그미족이 유일하게 길러 수확하는 작물이 대마(마리화나)였다고 한다. 식량이 아니라 마약을 먼저 재배한것이다. 피그미족뿐만아니라 다른부족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마약 재배가 농업의 발견, 나아가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즉, 안정적으로 마약을 공급하기 위해 최초의 농경이 시작되었고, 그러다 '식량도 재배해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칼 세이건은 대마초옹호론자 였다. 

 

이누이트족

피그미족 외에도 이제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원시인은 마약이든 알코올이든 향정신성 물질을 즐기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누이트족만은 이런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처한 환경이 워낙 춥고 척박해 이런 유의 식물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탐험가들이 알코올을 전해줬을 때 바로 중독 되어 버렸다. 마약이 인류를 진화시켰는지, 농경을 유발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인류가 이를 즐긴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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