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000년경이 되면 큰 문명이 생기고, 도시도 생기고, 문자도 생겨난다. 문자가 생긴 시점부터 바로 마약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다. 즉, 그 이전부터 마약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양귀비, 인더스와 황허 문명에서는 대마, 마야 문명에서는 코카잎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마약식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도시가 생겨나면 사람들 사이에 계층이 나뉘기 시작한다. 그러면 종교의식을 전문으로 하는 계층도 생겨날 것이고, 그들 나름대로 비법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해준다. 어떤 약을 어떻게 빨면 신을 본다. 이런것이 기록으로 전해진다.

 

이때 사람들은 지금과는 달리 마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약도 없는 시절에 이 식물을 먹으면 고통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니 신성시할 수 밖에 없다. 원시 종교의 샤먼과 지역의 우두머리들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귀한 마약 식물을 독점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호의를 베풀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건 다 윗사람들 몫이었다.

 

고대시대가 되면 계층이 완벽히 분화된다. 종교도 완벽히 체계를 갖추는데, 그 때문에 기존 샤먼의 입지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마약을 단순히 신의 선물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샤먼 영업이 힘들어진다. 요즘으로 치면 마술같은 겁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데 관객들이 순수하게 보는 게 아니라, '어디 한번 해봐, 내가 속임수를 밝혀줄게' 하면서 카메라로 찍으니까 마술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마약에 대해 "명약과 독약의 차이는 단지 복용 비율에 의존한다"라는, 그러니까 적당히 먹으면 좋고 많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식의 요즘 의사나 할 법한 말까지 합니다. 지금 듣기에는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소리지만 당시에는 꽤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이전처럼 마약을 신성시하거나 무조건 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으로 본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마약은 신성한 것이었다. 이 시기 마약의 위상은 그리스신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데메테로'라는 여신이 있다. 대지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대지와 풍요는 곧 농업을 의미하니까, 농경상회에서 꽤 끗발 날리는 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데메테르의 상징 중 하나가 양귀비다. 

유럽 여행을 가면 도시마다 미술관이 있고, 그 미술관에는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작품이 많이 걸려 있다. 대부분 그리스 로마신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 작품이 그 작품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신이 그 신 같다. 신이 너무 많아서 구분이 안 된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이 작품 속 인물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제우스는 번개, 포세이돈은 삼지창, 헤르메스는 네이버 모자를 쓰고 있다. 데메테르의 경우 곡식이나 농기구를 손에 들고 있다. 데메테르의 경우 곡식이나 농기구를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곡식이 보리 아니면 양귀비이다.

 

당시 사람들은 양귀비를 너무 좋아해서 신에게도 양귀비 꽃을 바쳤습니다. 자신들이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것을 신에게 바쳤다. 그래서 지금도 데메테르 여신을 모셨던 신전에 가보면, 주위에 양귀비꽃이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양귀비는 핫 아이템이었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못 낳으면 양귀비 브로치를 주고, 집들이 할 때는 양귀비가 그려진 그릇을 선물로 했다. 당시에는 무엇이든 양귀비 모양이면 잘 팔렸다.

 

아편은 양귀비의 즙을 가공해 만든 마약이다. 화학적인 과정이 없으니 당시에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에서는 당시에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에서는 아편을 데메테르 여신이 가져왔다고 되어 있는데, 대지와 농업의 여신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선물이 아편이라니, 칼 세이건의 추측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하늘의 신 제우스와 대지의 신 데메테르는 남매인데, 둘 사이에 페르세포네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의 신 하데스가 이 페르세포네를 짝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청혼을 합니다. 그녀가 아닌 그녀의 부모에게. 가부장제 사회였으니까. 제우스는 내심 좋았습니다. 자신의 딸을 하데스에게 시집보내면, 지하도 자신의 통제 아래 둘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데메테르는 자신의 딸이 어두컴컴한 지하세계에 가는 것을 절대 용납 할 수 없었습니다.

하데스는 제우스와 작당해 페르세포네를 대낮에 납치해서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지하로 그냥 데려가버립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데메테르는 딸이 돌아오지 않자, 9일 밤낮을 딸을 찾아 세계를 떠돕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태양신 헬리오스는 데메테르에게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데메테르는 직감적으로 이 납치 사건에 제우스가 관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데메테르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합니다. 일을 안 하니 땅이 메마르고, 곡식이 죽고, 세상은 굶주림으로 가득 찹니다. 민중들이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제우스가 나섭니다. 그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다시 지상으로 올려 보낼 것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이미 지옥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원칙상 살아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양측은 페르세포네가 1년 중 8개월은 지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내고, 나머지 4개월은 지하에서 납치범 하데스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타협합니다. 그래서 데메테르 여신도 1년 중 딸이 지상에 와 있는 8개월만 일을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 태업 기간이 바로 여름입니다.

 

그럼 이 이야기에서 마약이 어디 나오느냐? 어머니 데메테르가 딸의 납치에 충격을 받아 불면증을 겪게됩니다. 그때 데메테르가 아편을 먹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무튼 아편은 실제로 불면증에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화나 종교에서 양귀비는 수면, 죽음, 그리고 동시에 부활을 의미합니다. 미국 재향군인회를 포함한 서구권 국가에서는 전사한 군인에게 양귀비를 헌화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부활을 염원하는 의미입니다. 양귀비에 호의적이었던 당시의 문화가 현재까지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모녀를 모시는 '엘레우시스밀교'라는 컬트 종교가 있습니다. 이들은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올라와 어머니를 만나는 것을 기념해, 1년에 한번씩 '엘리우시스 제전'을 개최한다. 이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무조건 비밀 엄수 조약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비밀은 늘 완벽히 지켜지진 않는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이 제전은 10일간 진행되는데, 참석자들은 이런저런 의식을 치르며 9일간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키케온'이라는 음료를 마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을 만나든지 사후세계를 보든지, 진리를 찾고 그곳을 떠납니다. 키케온은 보통 와인을 기본으로 해서 보리와 박하를 섞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학자는 환각 효과가 있는 맥각균이 섞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무래도 신을 보려면 그 정도는 들어가야겠죠? 금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일종의 환각파티를 벌인 것이다.

 

이 행사는 컬트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큰 인기를 누렸고, 많은 사회 상류층이 참여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이 제전의 열혈 참가자 였다. 이 행사에 관한 두 사람의 평가를 들어 봅시다.

 

아래 세계에서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살겠지만, 이곳에서 정화 의식을 치른 사람들은 신과 함께 살 것이다. - 소크라테스

 

엘레우시스 밀교의 궁극적인 의도는, 우리가 내려온 원천적인 원리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며, 영적인 선을 완벽히 즐기는 것이다. - 플라톤

 

원천적인 원리와 영적인 선...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키케온을 마시고 본 환각이라는 강력한 의심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철학이 갑자기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뭔가 큰 배신감이 든다.

엘레우시스 밀교는 로마시대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도 이 행사의 마니아였다.

 

아테네인들이 로마에 남긴 많은 훌륭한 것 중에, 엘레우시스 밀교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엘레우시스 밀교 덕분에, 로마인들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삶은 벗어나 문명인이 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엘레우시스 밀교의 의식들로부터 삶의 시작에 대해 배웠으며, 행복하게 사는 힘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희망을 품고 죽을 수 있게 되었다. - 키케로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도 마약이 등장한다. 보통 술에 아편을 섞은 형태로 나오는데,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걸린 이들에게 안식을 주고, 부상의 고통을 덜어 준다. 재밌는 건, 작품 속에서 아편이 간혹 '망각의 약'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헬레네는 병사들의 상처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술에 특별한 약을 첨가하는데, 그 술을 마신 이들은 부모와 형제를 잃은 슬픔을 망각해 버립니다.

 

히포크라테스도 아편 츤데레 였습니다. 그는 아편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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